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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마주한 진짜 나의 얼굴

by bike89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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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800km

걷고 또 걷는 30일, 풍경보다 깊이 남은 건 조용한 마음의 울림이었다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도이자 성찰인 여정입니다.
800킬로미터라는 거리는
단지 발로만 걷는 길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과 마음속 기억을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진짜 나’를 만났습니다.

시작점,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느낀 설렘과 두려움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산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첫날.
순례자의 여권을 받아 들고
숄더백 안에는 설렘 반, 걱정 반이 섞여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800킬로를 다 걸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길에 들어선 순간,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을 안고 가는 용기’라는 걸 느꼈습니다.

아침의 빵 냄새, 저녁의 와인 – 일상이 주는 감사

매일 아침 순례자 숙소에서 일어나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걷다가 마을에 도착하면
작은 바에서 타파스와 와인을 마시고,
햇살 아래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 단순한 일상 속에서
이토록 많은 감사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풍경보다
사람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발의 통증이 마음의 벽을 허문 날

6일째 되는 날,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통은 나를 더 낮게 만들었고,
그 낮아짐은 다른 순례자들과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해주었습니다.

말없이 물을 건네는 손,
격려 한마디에 눈물짓는 마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멈춤의 미학, 순례자의 리듬

순례길에서는 빠르게 걷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언제 멈출지, 어디에서 숨을 고를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

길가의 교회, 바람 부는 언덕,
혼자 앉아 사과를 먹는 한 벤치에서
나는 천천히 걷는 삶의 아름다움을 배웠습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라는 걸,
그 리듬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드는 것이란 걸 말이죠.

크루즈 데 페로, 돌을 내려놓던 순간

길 위의 상징적인 장소인
크루즈 데 페로(Cruz de Ferro),
순례자들이 각자의 돌을 내려놓는 곳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돌 하나를 꺼내
십자가 아래에 놓았습니다.

그 돌은 어떤 의미에서든
내 마음속 무게였고,
그걸 내려놓은 순간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렀습니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은
그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멈춘 발걸음

800킬로를 걸어
마침내 도착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그 앞에서 나는 발을 멈췄습니다.

도착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를 성취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길을 걷는 동안
내가 얼마나 ‘살아 있었다’는 걸
확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길은
정답을 찾는 여정이 아닌
질문을 안고 살아도 괜찮다는 걸
허락해주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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