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130미터, 거대한 산 앞에서 나는 너무도 작았고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
히말라야는 사진이나 다큐로만 보던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문득 이 산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찾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해발 4,130미터의 그곳은
숨이 찰수록 마음은 비워졌고,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내 안의 감정은 오히려 단순해졌습니다.
이 글은 ‘정상’이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느꼈던
히말라야와 나의 조용한 만남의 기록입니다.
포카라에서 시작된 작은 걸음
네팔의 도시 포카라(Pokhara)는
ABC 트레킹의 출발점이자
배낭여행자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곳입니다.
평화로운 페와 호수 옆을 걸으며
트레킹을 앞둔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품었고,
가벼운 티벳차 한 잔과 함께
나는 이 길을 정말 걷게 되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이곳에서부터 모든 '속도'는 자연에게 양보해야 했습니다.
첫날, 발걸음보다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
초입은 숲길이 많고
날씨도 선선했지만
생각보다 가파른 계단과
짐의 무게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무거웠던 건
내 안에 담아 온 감정과
마음속 잡념들이었습니다.
트레킹이 힘든 게 아니라
비워지지 않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
더 버거웠던 하루였습니다.
구름이 열릴 때, 산은 처음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틀째 아침,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마차푸차레(물고기꼬리봉)가
수줍듯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말이 막히고,
숨이 잠시 멈췄습니다.
사진도 영상도 이 순간을 담을 수는 없었고
오직 내 두 눈과 감정만이
그 장면을 진짜로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고도는 올라가고, 말은 줄어든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점점 줄고
걷는 소리와 숨소리만 들립니다.
묵묵히 걷는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마음속 깊이 묻어둔 생각들을
조용히 꺼내 보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보여주는 여행이 아니라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한 여정이라는 걸
히말라야는 나에게 가르쳐줬습니다.
마침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그리고 침묵
여섯째 날 저녁,
드디어 ABC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4,130미터, 눈과 구름 사이에 잠긴 공간.
사방이 고요했고
하늘은 맑았고
별은 너무도 가까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혼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산을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도달해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마음은 가벼웠고 눈에는 풍경이 남았다
하산길은 훨씬 빠르지만
더 천천히 걷고 싶었습니다.
지나쳤던 나무, 스쳐갔던 바람,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작은 풍경들이
그제야 진짜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비우고 나서야
세상이 이토록 맑고
내 감정이 이토록 선명하다는 걸
그 길 위에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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