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가까이, 끝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마음은 오히려 시작을 배웠습니다
지구 반대편,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땅.
그곳의 이름은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최남단, 남극과 가장 가까운 항구 도시에서
나는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끝이라는 단어가 늘 두려웠던 나에게
이곳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풍경이었어요.
끝에서 마주한 낯선 평화
우수아이아에 도착한 날,
세찬 바람과 낮은 구름, 얼어붙은 바다가
마치 “어서 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도시는 작고 조용했지만,
그 고요함은 빈 공간이 아니라
삶이 단단히 깃든 공간이었어요.
하루에도 네 계절이 오간다는 그 기후 속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그러나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비글 해협 앞에 멈춘 발걸음
파란 선이 흘러가는 비글 해협 앞에 서 있었을 때
나는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은 남극, 뒤는 세상.
그 중간쯤에 선 나는,
조금도 조급하지 않았고,
오히려 멈추는 법을 배운 것 같았습니다.
그 물결 앞에서
어떤 말도 사치처럼 느껴졌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정들이
가슴 깊숙이 차올랐습니다.
‘여기까지’라는 말은,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뜻
많은 사람들이 우수아이아를 ‘도달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삶이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을 경험했습니다.
끝까지 가봐야 비로소
진짜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
돌아서야 비로소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정확히 알게 됩니다.
우수아이아는 ‘종착역’이 아니라
내 마음의 ‘시발역’이 되어주었습니다.
펭귄섬에서 배운 단순한 진심
해안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마르티요 섬이라는 작은 펭귄섬에 다다랐습니다.
수백 마리의 펭귄들이 아무 경계 없이
사람들 옆에서 걸어가고, 울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은 너무도 단순하고 순수해서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복잡한 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내려놓고, 조금만 바라보면
세상은 이렇게도 따뜻하고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그 펭귄들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끝에서, 누군가에게 쓰고 싶어졌다
여행지에서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어졌어요.
"잘 지내고 있니?"
"여기 풍경이 너를 생각나게 했어."
"언젠가 이곳에 같이 오면 좋겠어."
우수아이아의 바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썼던 그 말들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였을지도 모릅니다.
끝은 끝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시작이었다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날,
공항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Fin del mundo, principio de todo.”
"세상의 끝, 모든 것의 시작."
그 문장은 이 여행 전체를 설명해주는 말이었습니다.
끝이라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여백이고
그 여백에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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